top of page

 요양이라는 명목으로 병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놓고 간 시집은 시간 때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. 저 깊은 곳에 꾹 눌러온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익숙한 온기. 어느 날엔가 그가 버리려던 것을 빼앗아 제 책 사이에 소중히 넣어놓았던, 이젠 누렇게 변색이 되어버린 쪼가리에 적힌 것과 비슷한 온도였다.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워지는 온기. 금방이라도 울컥 튀어나와버릴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서둘러 책의 커버를 덮어버렸다. 울렁, 또 울렁. 눈앞에 일렁이는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알 길은 없었다. 눈을 꾹 감았다 뜨며 눈에 들어오는 저자명에 아마도 멍청한 표정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.

 

 

‘권 담혁’

 

 

 억누르던 감정은 제멋대로 튀어나와 커버 위를 톡, 톡 적셔버린다. 저에게 지어주던 미소도 손을 잡아끌던 체온도 시린 의수의 냉기마저 떠올라버린다. 상냥하던 그 사람이 자신을 잊었을까 괜히 씁쓸한 미소만 짓던 그때가 떠오르며 웃기지도 않게 안심해버린다. 잊히지 않았구나 하고, 이기적이게도.

 

 

 바다에 흘려보낸 줄로만 알았던 마음은 여전히 꾹꾹 억눌려 있었다. 금방이라도 터질 듯, 제 존재를 외치고 있는 것을 옛날의 나도, 지금의 나 역시도 무시하고 있었다.

bottom of page